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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공감 레전드]저희 엄마는 전업주부입니다 본문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입니다.
밖에서 돈을 벌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놀기 때문에
노예 취급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전업주부입니다.
‘사회인’이 아니기 때문에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고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며
남편을 떠받들어야 하는 전업주부입니다.
부부 사이의 차별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돈을 벌어오지 않기 때문에’ 예외라고
말하는 전업주부입니다.
저는 그런 엄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엄마는 학창시절 공부를 굉장히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가지 못하고 취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은 아들이나 가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젊고 능력 있는 아가씨였습니다.
직장의 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동시에 집안일과 육아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아빠의 직장일을 위해 해외에 따라나갔습니다.
언어도 모르는 타국에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홀로 어린 저를 키우고
장을 보며 집안일을 도맡아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핑계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강한 ‘엄마’여야 했고 남편을 모시는 ‘아내’여야 했습니다.
수 년 후 한국에 돌아와 둘째를 낳고 엄마는 점점 더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갔습니다.
전업주부의 첫 번째 일은 아이들을 완벽하게 키워내는 일입니다.
언제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아빠는 ‘직장에서 힘들게 돈을 벌어왔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에는 안방에 틀어박혀
홀로 쉬며 스트레스를 풀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생은 퇴근시간 외에는 아빠를 볼 수 없었습니다.
육아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어야 하기 때문에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함께 놀아주느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안방에조차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아빠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은 엄마만의 일이었습니다.
동생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했을 때에도, 우리가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도, 커가면서 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대입을 준비하는
그 모든 일도 엄마 홀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역시 아빠는 육아로 스트레스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성적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은 엄마의 잘못이었습니다.
왜냐면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엄마만의 책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업주부의 두 번째 일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일입니다.
음식도 장을 봐서 매일 직접 맛있게 요리를 해야 합니다.
완성된 반찬을 사오는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편해질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직접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려서 깨끗한 옷을 제공해야 합니다.
집도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물수건로 닦아 먼지 하나 없이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따금 은행에 들러 관련 업무도 처리하고 기타 모든 잡일을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전업주부인 아줌마’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집안일이 많아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전업주부는 ‘집에서 먹고 노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업주부의 세 번째 일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시댁을 모시는 일입니다.
남편은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할 때 시간에 딱 맞춰
아내가 직접 요리한 맛있는 아침식사를 받고, 저녁에 퇴근할 때 시간에 딱 맞춰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입고 다녀온 옷을 넘겨주고 직접 요리한 맛있는 저녁식사를 받으며,
휴식하면서도 간식이 필요할 때에는 아내를 불러 간식을 만들어가지고 오라고 할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저녁밥을 먹고 들어올 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엄마는 항상 아빠를 위해 대기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업주부인 ‘아줌마’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집에 있든 밖에 있든 항상 대기하여 바로바로 연락을 받아야 하고,
남편이 필요한 때에 바로바로 밥을 해주고 과일을 깎아줘야 하며,
항상 필요한 그 모든 뒷바라지를 즉각 해내야 합니다.
명절에는 시댁에 가서 미리 제사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친척들이 모이면 음식을 내가야 하며
설거지를 하고 남편이 신경 쓰지 않도록 아이들은 따로 관리해야 합니다.
시아버지가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며 내온 음식상을 엎든 말든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가뜩이나 직장에서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데
명절에는 무려 힘들게 ‘운전’까지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남편의 부모님이니 무조건 알아서 모셔야 합니다.
엄마가 그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몸이 쇠약해져 건강에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한’ 엄마의 잘못입니다.
학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말하는 동생 때문에 아빠가 화가 나서
엄마한테 생활비로 180만 원을 주더라도 엄마는 그것만으로 4인 가족 생활비를 완벽하게 꾸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빠가 신경 쓰지 않도록 육아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 엄마의 잘못이며,
‘돈을 벌지도 않는 주제에 생활비를 아껴 써야 하는’ 엄마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고위공무원이어서 봉급을 넉넉하게 받을 것이 분명한 데에도
엄마는 아빠의 봉급이 얼마인지 절대 알 권리가 없으며 본인이 화가 난다는 이유로
생활비를 180만 원을 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별로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비가 모자라니 더 달라고 말하려면 가계부를 일일히 써서 보여줘야 합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게 엄마는 돈을 벌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감당하기 힘들어 손목을 긋고 수면제를 다량 삼켰을 때에도
죽으려고 하는 것조차 생각이 모자란 엄마의 잘못이었습니다.
엄마는 이혼도 하지 못합니다. 대학도 나오지 않고 25년간 경력이 단절되어 있었으며
건강에 아주 큰 문제가 생겨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것도 힘든 50대 아줌마는
이제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겪은 그 모든 일들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아빠는 혼자서 열심히 노력해서 고위공무원이 되었는데,
엄마는 결혼생활 내내 돈을 벌지 않고 집에서 먹고 논 전업주부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인’이 아니라서 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업주부인 아줌마는 집에서 밥을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 식모나 노예 생활과 다른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빠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전업주부는 먹고 놀기 때문에
이런 일상을 겪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집에서 먹고 노는’ 우리 엄마는 별로 안녕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분들의 어머니는 안녕하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집에서 먹고 노는’데도 불구하고 안녕하지 못한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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